[이 동네 어때요?] 플라센티아(Placenta)…”공기 좋아요, 잠도 잘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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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플라센티아는 오렌지카운티 북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다. 요바린다,
풀러턴, 애너하임, 브레아와 각각 동서남북으로 시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인접한 브레아처럼 유명 쇼핑몰도 없고 풀러턴같이 큰 대학도 없고부에나파크나 애너하임처럼 테마공원이나 지역 연고 프로 스포츠팀하나 없어서 그런지 플라센티아라는 도시 이름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감이 있다.
하지만 주거환경이 쾌적하고 상대적으로 집값도 주변 도시만큼 비싸지 않은베드타운으로 한인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는 곳이 플라센티아다.

2010년 센서스 결과 전체 인구는 5만533명이었으며 2013년 추정 인구는 5만2206명이다.
주민 구성은 62%가 백인이고 히스패닉(혹은 라티노)계가 약 36%다. 아시안은약 15%로 세 번째로 많다.

2010년 센서스에 나타난 한인 비율은 978명으로 전체 주민의 1.9%였다.
남가주에서 밤하늘의 별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이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공기가 맑다는 것도 플라센티아의 자랑이다. 시 면적은 약 6.6스퀘어마일이다.

▶교통 및 학군

57번 프리웨이가 시의 남서쪽을 지나고 있고 시의 남쪽으로는 91번 프리웨이가 지난다.
메트로링크 철도 91번 라인도 시 남쪽을 지나고 있다.
LA로 바로 이어지는 프리웨이가 없다 보니 자동차로 LA 출퇴근을 하려면 긴 로컬길을 이용해야 한다. 이곳 한인들은 인근 브레아나 풀러턴 한인 업소들을 많이 이용한다.

학군은 플라센티아-요바린다 통합교육구에 속해 있다.
엘도라도, 발렌시아, 엘카미노리얼 등 3개의 공립 고등학교가 있으며 공립 중학교도 3개가 있다.
각급 학교의 학업 성취도는 대체로 높은 편이다.

▶역사

플라센티아의 역사는 캘리포니아주가 멕시코 땅이었던 183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멕시코 총독은 오늘날 애너하임, 풀러턴, 라하브라, 요바린다 등을 아우르는 넓은 땅을 후안 온티베로스라는 사람에게 하사했는데 지금의 플라센티아도 그 중의 일부였다.
이후 1865년 서부개척에 나선 대니얼 크레이머라는 사람이 이 땅 중에서 3900에이커를 사들였고 3년 뒤엔 윌리엄 맥패든과 그의 아내 사라 앤이 또 100에이커를 매입하면서
커뮤니티의 기초가 마련됐다. 플라센티아란 이름은 1876년에 붙여졌으며 ‘살기 좋은 곳(pleasant place to live)’이란 뜻을 가진 스페인어에서 따왔다.

1910년엔 A. S. 브래드포드라는 사람이 철로를 유치하면서 플라센티아는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이 지역 주요 생산물인 오렌지, 월넛, 아보카도, 포도 등이 타지로 실려 나갔을 뿐만 아니라 이를 포장하기 위한 공장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지역경제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로 꾸준히 인구가 늘어나자 1926년, 마침내 주민투표를 통해 정식 시로 출범하게 됐다.

▶ 명소

매주 화요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플라센티아 타운센터(130 E. Yorba Linda Blvd.)에서 열리는 파머스마켓이 유명하다. 시 정부로부터 공인을 받은 30여 개 벤더들이 준비한 다양한 유기농 제품과 지역 특산물들을 만날 수 있다.

조지 키 랜치 역사 공원(625 Bastanchury Rd.)은 2.2에이커 규모의 공원으로 1899년에 지어진 조지아 양식의 건물과 오렌지 숲이 인상적인 이색 공간이다. 이곳 뮤지엄에는 서부개척 시대의 농기구나 손도구 등이 전시돼 있으며 넓은 정원은 결혼식 장소로도 애용된다.

1902년 건축된 콜로니얼 양식의 건물인 브래드포드 하우스도(The Bradford House, 136 Palm Circle.)도 유명하다. 1973년 브래드포드의 후손들이 이 집과 주변 땅 1.5에이커를 커뮤니티에 기부함으로써 일반인들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출처 :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4255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