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잤는데 낮이면 졸리다…특히 식후에 그렇다면 ‘이 병’ [건강한 가족]
졸음이 보내는 신호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면서 낮에 졸음이 쏟아진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환경 변화에 따라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충분한 숙면을 취하면 대부분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면시간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주간에 심한 졸음이 밀려온다면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기면증·당뇨병·우울증 등 다른 원인 질환이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졸음’을 단순 피로 증상으로 여겨선 안 되는 이유다. 일상 속 불청객인 졸음에 숨은 질환을 알아본다.
기면증 탈력발작 오며 제어 불가능한 졸음
심한 졸음을 유발하는 질환으로는 기면증이 대표적이다. 기면증이 있을 경우 전날 밤에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낮에 과도한 졸음이 쏟아질 수 있다. 단순히 꾸벅꾸벅 조는 정도가 아니라 특정 행동을 하면서도 갑자기 잠에 빠져드는 것이 특징이다. 걷거나 말을 할 때, 심지어 운전할 때도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로 잠드는 일이 허다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의식을 잃듯이 졸음이 오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가 많다. 갑작스럽게 잠들면 10~20분 후에 다시 깨어나고, 2~3시간 간격으로 같은 증상이 반복된다. 기면증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세포나 장기 등을 공격하면서 나타나는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이다. 뇌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신경전달물질인 ‘하이포크레틴’이 부족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졸음과 기면증을 구분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탈력발작(脫力發作) 여부다. 이는 몸의 일부나 전체에서 근육의 힘이 빠지는 증상이다. 주로 눈꺼풀·턱·목·어깨·무릎 등에서 나타난다. 몸이 꺾여서 접히듯 쓰러지는 식으로 발작을 보인다. 특히 크게 웃거나 화를 내는 등 강한 감정 변화가 있을 때 순간적으로 발생한다. 둘째는 수면마비다. 기면증 환자는 흔히 가위눌림으로 표현하는 수면마비 증상을 경험한다. 의식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몸은 깨어나지 못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환각 증상과 야간 불면증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기면증 환자는 안전사고를 당할 위험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높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참을 수 없는 주간 졸림이 이어진다면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당뇨병 단 음식 먹었을 때 과도하게 느껴지는 식곤증
유독 식사 후 과도한 졸음이 몰려온다면 혈당 상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식사 후 잠이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화 과정에서 혈액이 위장으로 몰려 뇌로 가는 혈액량이 줄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먹고 나서도 참을 수 없는 식곤증이 느껴진다면 혈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특히 탄수화물 흡수가 빠른 죽이나 과일주스 같은 단당류가 많은 음식을 먹었을 때 쏟아지는 식곤증을 주의해야 한다. 혈당 조절 능력이 떨어진 사람은 이러한 음식을 섭취했을 때 평소보다 혈당이 급격히 상승한다. 이를 낮추려고 인슐린이 과다 분비돼 다시 혈당이 뚝 떨어지면서 극심한 졸음과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당뇨병의 전조 증상이다.
식사 후 졸음이 밀려오는 게 단순 혈류량의 문제인지, 당뇨병의 전조 증상인지 어떻게 판단할까. 당뇨병으로 진행되면 대표적으로 ‘삼다(三多) 증상’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소변량이 증가하는 ‘다뇨’ ▶갈증이 심해 물을 많이 마시는 ‘다음’ ▶식욕이 늘어 음식을 많이 먹는 ‘다식’이 있다. 만약 식곤증 외에도 이와 같은 삼다 증상이 동반된다면 이미 당뇨병이 진행됐을 수 있다. 이 경우 이른 시일 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특히 젊은 연령대일수록 식후 졸음을 단순 식곤증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최근 젊은 당뇨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의심 증상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정형 우울증 과수면·과식·납마비 동반하는 심한 졸음
의외로 우울증이 과도한 졸음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울증에도 종류가 있다. 그만큼 증상도 조금씩 다르다.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면 슬픔과 함께 수면 부족, 식욕 저하와 같은 증상을 떠올린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주요 우울 장애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 중에서도 즐거움을 느끼면서 잠을 잘 자고 식사도 잘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비정형 우울증’이다. 이는 전체 우울증 환자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문제는 일반적인 우울증 양상과 달라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평소보다 수면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면 비정형 우울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전날 밤에 과도하게 잠을 잤는데도 낮에 심한 졸음이 밀려온다는 특징이 있다. 비정형 우울증을 가늠하는 대표 증상으로는 ▶하루 10시간 이상 과수면 ▶과식으로 인한 체중 증가 ▶온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납마비 증상 ▶심한 감정 기복 등이 있다. 대인관계를 지나치게 신경 쓰면서 거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울증 초기에 자주 나타난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만성화로 진행하면 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수면과 함께 비정형 우울증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하면 전문의를 찾아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영경(shin.youngkyung@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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