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범죄 혐의 입증 어려워 처벌 흐지부지
한인 노인 등 폭행당했지만
판사가 일부 혐의만 인정해
뉴욕선 증거 제출해도 경범
아시안 증오범죄와 관련해 혐의 입증이 어려워 기소와 처벌이 쉽지 않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자칫 아시아계 주민이 피해를 봐도 신고를 꺼리고, 증오범죄의 심각성을 축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먼저 지난 15일 샌프란시스코카운티수피리어법원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지역 유명 공원인 ‘돌로레스 파크(Dolores Park)’에서 한인 노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주민들을 폭행, 증오범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아르만도 산체스 바스케스(30)에 대한 예비 심리가 진행됐다.
검찰에 따르면 예비심리에서 심리를 담당한 마리사 천 판사가 바스케스에게 제기된 혐의 중 노인 학대 등과 관련한 두 가지 혐의만 인정했다. 그 외 중폭행 혐의는 경범죄로 경감하고, 노인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중범죄 혐의는 기각했다.
피해자가 모두 아시아계임에도 법원은 용의자에게 일부 혐의만 인정한 셈이다. 특히 용의자에 대한 혐의를 기각한 판사는 한인으로, 샌프란시스코검찰은 즉각 “해당 혐의에 대한 기소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샌프란시스코검찰 브룩 젠킨슨 검사는 “용의자는 노인 학대뿐 아니라 분명 치명적인 흉기를 사용한 중범죄 폭행도 했다”며 “우리는 계속해서 이 재판을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용의자 바스케스는 지난달 30일 샌프란시스코 지역 돌로레스파크에서 아시아계 주민들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소리를 지르고 벽돌과 쇠 살대 등을 던진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 중에는 73세의 한인 노인도 포함됐었다. 〈본지 2월 3일 자 A-2면〉
지난 17일 데이브 민 가주 상원의원(민주·어바인)이 대중교통 아시아계 이용자 보호 법안(SB434)을 소개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본지 2월18일자 A-2면〉
뉴욕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에스더 이씨는 “지하철에서 흑인 승객이 인종차별적 욕과 고함을 지르자 당시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녹화해 경찰에 제출한 적이 있다”며 “경찰은 가해자가 ‘아시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 증오범죄 사례로 접수할 수 없다고 했고 당시 사건은 경범죄로 처리됐다”고 말했다.
법집행기관의 증오범죄 대응이 사안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점도 문제다. 연방 검찰은 최근 LA지역 유대교 회당을 나서던 유대인에게 총격을 가한 제이미 트란(28)을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했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LA지역 한 한인 변호사는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도 피해를 볼 때마다 계속 연대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당국도 긴장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며 “출신지, 인종 등을 거론하며 욕설을 내뱉고 위협을 가하는데도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보이지 않게 아시아계를 차별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한편, 돌로레스 파크에서 아시아계 주민 폭행 사건을 담당한 마리사 천 판사는 지난 2021년부터 샌프란시스코카운티수피리어법원 판사로 재직했다. 이 사건에 대한 다음 공판은 3월 중에 진행된다. 용의자 바스케스의 변호를 맡은 클레이 해서웨이 변호사는 예비 심리에서 “바스케스는 쇠 살대를 들지 않았으며, 이 사건으로 신체적 상처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검찰은 또 다른 피해자 중에 비아시아계가 있었는데도 그 사실은 기소 내용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증오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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