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민? 대신 일본 간다”…베트남서 韓 1위→10위 밖, 왜 [이제는 이민시대]
지난달 18일 베트남 하노이 소재 인력 송출업체 VXT에서 용접 실습을 마친 교육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노이=이영근 기자
“원래 한국에 가려 했는데…….”
지난달 18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인력 송출업체 VXT. 베트남 청년들이 5~7명씩 모여 용접 연습에 빠져있었다. 칸막이로 나뉜 공간에서 작업복을 입은 베트남 청년들은 각종 공구 사용법을 익히며 서로의 실력을 점검했다. 일본 유학을 준비중이라는 응우옌 비엣 찌(24)는 취재진에게 “한국은 비자 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 일본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답했다.
중앙일보는 저출산·고령화 심화로 예견된 ‘이민 시대’를 제대로 대비하고자 우리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주요 이민 유치 경쟁국과 인력 송출국, 이민 유치에 성공한 선진국들의 현장을 두루 살펴봤다. 앞서 경쟁국인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소개했고 이어 주요 인력 송출국인 베트남 현장을 보도한다.
법무부 출입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24만5912명이다. 베트남은 10.5%(23만5007명)로, 재중동포를 포함한 중국 37.8%(84만9804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태국 9.0%(20만1681명), 미국 7.0%(15만6562명), 우즈베키스탄 3.5%(7만9136명) 등이 뒤를 따른다. 중앙일보가 인력 송출국 현장 취재 대상으로 베트남을 선택한 이유다.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인력 송출업체 VXT에서 베트남 청년들이 용접 등 기술 공부를 하고 있다. 하노이=이태윤 기자
VXT는 해외 취업 및 유학 비자 준비를 돕는 베트남 업체다. 총 5곳의 지부가 있고, 인력 송출 교육은 3곳에서 이뤄진다. 매년 2400~3000명이 교육을 받은 후 해외로 나가는데 목적지는 대부분 일본이나 대만이다. 부 홍 꽝 VXT 사장은 “한국은 비자 심사에 서류를 많이 요구하고, 유학생 송출 비용도 비싸다”며 “차라리 유럽에 보내는 게 더 쉽다”고 말했다.
인력 송출국에서 ‘인기 국가’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UN 국제이주기구(IOM)가 지난 1분기 베트남인이 선호하는 이주 희망국가 10개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순위에도 들지 못했다. 1위는 일본이었고, 미국, 대만, 독일, 프랑스 등이 뒤를 이었다. 해당 설문은 베트남 주요 인력송출 지역(하띤·응에안·꽝빈성)의 17~40세, 58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불과 6개월 전 조사에서는 한국이 1위였다는 점이다. 급전직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베트남 청년의 해외 이주 인기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UN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해외로 나간 베트남 노동자는 3만7923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이 퍼지기 전인 2019년 1분기(3만2343명)보다 17% 늘어났다. 한국에 대한 관심만 낮아진 것이다. UN IOM은 “베트남 전체로 보면 해외 이주 기회 관련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나, 한국 관련 관심은 오히려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인기 급락은 경직된 제도 탓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2016년부터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와 ‘EPS 프로그램의 불법체류 근로자 축소 로드맵’을 체결해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고용허가 기한 만료에도 귀국하지 않는 노동자가 60명 이상인 지역 ▶불법 체류 노동자 비율이 30% 이상인 지역에서는 노동자를 받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거주하는 특정 지역에 불법 체류자가 많으면 그 지역 출신을 일괄적으로 받지 않는 셈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7월에도 하이즈엉·하띤·응에안·탄화성의 4개성 8개 지방 노동 수출을 금지했다.
하노이 소재 인력 송출업체 VXT에서 용접 실습에 여념이 없는 교육생들. 하노이=이영근 기자
이 중 2곳(하띤, 응에안)이 이번 UN IOM 인기 국가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후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행 집단 포기 현상’이 일어난 셈이다. 하이즈엉성 출신인 부 찌 선(21)은 “한국에 가고 싶었으나 지역 제한 때문에 길이 막혔다”며 “주변에 이런 친구가 수도 없이 많은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일본 유학을 준비 중이다.
2016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실효성도 낮다. 2017년 3만1691명이던 베트남 국적 불법 체류자는 2021년 7만411명으로 오히려 급증했다. 응우옌 짜 리엠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 해외노동부(DOLAB) 부국장은 “지역으로 제한해도 거주지를 변경하면 그뿐”이라며 “베트남 거주법 상 국민의 거주지 변경을 제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측에 효과 없는 정책을 수정해 달라고 지속해서 건의하고 있으나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국 정부는 해당 조치가 ‘베트남 정부에서 먼저 마련한 불법 체류 자구책’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역 제한은 다른 송출국에서는 실행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외국인인력담당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지역 제한을 요청한 적이 없다”면서도 “베트남 정부 요청으로 현재 다른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체류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한국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렵다. 박창덕 한국이민전문가협회 해외협력본부장은 “실효성도 없는 제도를 7년간 방치한 결과 베트남에서 ‘한국은 지역 차별하는 나라’란 부정적 이미지만 남았다”며 “불법 체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하지 않고 ‘베트남이 알아서 맞춰와라’식이면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민 시대’에 앞서 제도 유연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송출국에서 한국행 선호도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박미형 UN IOM 베트남사무소장은 “한국 순위 급락은 UN 조사 대상과 이주 제한 지역이 겹치면서 발생한 현상”이라면서도 “하지만 한국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때 나온 발표라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문만 열면 송출국 노동자가 줄을 설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라며 “이들은 초과근무를 포함한 예상 급여, 대기 시간, 이민에 필요한 복잡한 서류 절차, 이주 전 필요 비용 등을 전부 따져 계산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어 “효과 없이 반감만 키우는 규제 일변도로 갈 게 아니라 불법 체류의 근본 원인인 고비용 이주 구조를 개선하고 최소한 한국 기업 수요는 충족시킬 정도로 이주 쿼터를 확대하는 등의 제도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도연 UN 국제이주기구 책임도 “‘한국은 좋은 나라니까 당연히 오겠지’란 인식에서 벗어나 통계에 기반한 합리적 이민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며 “방탄소년단(BTS)의 인기가 곧 한국의 인기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태윤.이영근(lee.taeyu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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